( https://thpop.tistory.com/45 / 알베르 카뮈 - 「이방인」을 읽고 ··· (1))
이 책을 읽고 '이방인'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명사
1.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2. 유대인이 선민(選民) 의식에서 그들 이외의 여러 민족을 얕잡아 이르던 말.
2번 뜻을 이용해 생각해보기에는 내 지식이 깊지 않아 1번 뜻을 이용해 생각해보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사전적 의미가 이 소설에서는 '사회 밖에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과연 이 뜻이 '뫼르소'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에 적절할까?
뫼르소라는 인물은 비록 그 행동이 쉬이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생략된 표현으로 표현하는 그런 인물이지만, 다른 인물들과도 어울리고, 재판에서 그들이 뫼르소에 대해 해준 긍정적인 증언들을 고려하면 내가 생각했던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뫼르소는 어떤 의미에서 '이방인'인 것일까?
그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갖는 것들을 포기한 인물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야망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아 야망을 갖지도 않으며,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자신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아 자신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개선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즉 뫼르소는 사회에 녹아들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는 있으나, 다른 사람들이 갖는 무언가가 결여되었거나, 그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거부함으로써 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런 의미의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내가 흥미를 가졌던 부분은 부속 사제와의 대화이다.
부속 사제는 뫼르소가 자신과의 만남을 수 차례 거절했음에도, 자신은 항소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저 우정으로 방문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며 뫼르소를 찾아온다.
이는 나에게 의문을 주었다.
교도소에는 뫼르소 이외에도 다른 수감자들과 다른 사형수들이 있을 텐데, 왜 계속해서 거절하는 뫼르소를 반복해서 찾아오는 것일까?
무언가 부속 사제에게 계시같은 것이 있었다기에는, 그것에 대한 묘사도 없었고 뫼르소를 찾아와서 꺼낸 이야기도 "왜 면회를 거부하죠?", "하느님이 당신을 도우실 거에요." 같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 뿐이었다.
뫼르소의 건성인 대답과 반박에도 끊임없이 비슷한 얘기를 하던 그는 문득 왜 자신을 '아버지(father)'이라고 부르지 않고 "당신"이라고 부르는지 물어본다.
이에 대해서 뫼르소는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후 뫼르소가 신부에게 하는 말을 보면 "내가 옳았다. 내가 계속 옳았고, 항상 옳았다."와 같은 자기확신에 가득찬 발언을 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서, 사제와 뫼르소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확신이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 표현(혹은 발현)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뫼르소는 자신의 발언을 통해 이런 부분을 드러낸 바가 있지만 사제는 어떤 부분에서 드러나는가?
바로 앞서 내가 의문을 가졌던 "왜 계속해서 거절하는 뫼르소를 반복해서 찾아오는 것일까?"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제는 뫼르소를 끊임없이 찾아오고, 거절당한 끝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도 자신의 교리와 신념에 대해서 설명하며 뫼르소의 반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은 웬만한 수준의 자기 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리하자면, 뫼르소는 자기 확신이 "나는 항상 옳으며, 나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을 행하자."같은 느낌이라면, 신부는 "나는 항상 옳으며, 이것들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믿어야 한다." 같은 식으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뫼르소에 의해 계속 언급되는 '태양'에 대해서도 고찰해보고 싶으나, 이에 대해 고찰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느껴 다른 책을 좀 더 읽어보거나 관련 정보를 찾아본 후, 나중에 다시 이방인을 읽고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이 「이방인」이라는 책을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 번쯤은 읽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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